2023. 7. 25. 11:53ㆍ철학
"법철학"과 "역사 철학"을 읽고 헤겔에 대한 흥미가 동한 독자라면 다음 단계로 "자연 철학", 그리고 "정신 철학" 중 "주관 정신"편을 권할 만하다.
"자연 철학"은 "철학적 학문의 백과사전"의 2부를 이루고 있는데, 헤겔 자신의 강의록과 제자들의 강의 노트를 보충해서 헤겔이 죽은 후 1843년에 출판한 것을 흔히 독립 저작으로 취급해 그렇게 부른다.
헤겔의 자연 철학 사상만큼 오해 받고 저평가된 분야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헤겔 비판가들은 헤겔을 비판할 때 흔히 자연 철학을 빗대어 헤겔 철학의 무의미함과 터무니없음을 논증하고는 한다.
1801년 헤겔은 예나 대학에 교수 자격 논문을 제출해야 했는데, 그것이 바로 그의 최초의 자연 철학 관련 저술인 "행성 궤도에 관한 철학적 논구"였다.
거기서 헤겔은 화성과 목성 사이에는 어떤 행성도 있을 수 없음을 강하게 논증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것은 이미 그해 1월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피아치가 화성과 목성 사이의 궤도에서 소행서 케레스를 발견하고 난 후의 일이었다.
헤겔은 이미 발견한 소행성을 철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논증한 셈이다.
케레스를 발견했다는 것이 알려진 후 헤겔의 자연 철학에 대한 관심은 냉랭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헤겔이 사실에 바탕을 둔 경험 과학에 무지하고 오직 사변적일 뿐이라는 평가가 퍼지게 된다.
그러나 이후 화성과 목성 사이에 케레스 이외에도 더 많은 소행성들이 있다는 것이 발견되어 헤겔이 비판한 티티우스-보데 법칙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또한 헤겔 자연 철학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헤겔이 당대 자연 과학에 관해 무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 이후 자연 철학은 헤겔 철학 사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분야로 평가받는다.
천문학, 역학, 물리학, 광학, 생물학 등 자연 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는 "자연 철학"은 과학사적 배경 지식 없이는 읽고 이해하기 까다롭다.
다행히 당대의 과학적 논의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각주를 단 국역본이 출판되어 헤겔 자연 철학 사상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정신 철학"의 "주관 정신" 편은 헤겔의 심리 철학 사상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저술이다.
객관 정신에 해당하는 법철학이나 역사 철학, 절대정신에 해당하는 미학이나 종교 철학에 관한 강의 노트가 독립적인 저작으로 객관 정신과 절대정신에 관한 그의 사상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반면, 주관 정신에 해당하는 심리 철학 혹은 인식론은 별도로 출간된 적이 없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헤겔 자신은 이를 주제로 여러 학기 강의를 개설할 정도로 중시했다.
근래에 들어 주관 정신에 관한 강의 노트가 발굴, 출판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헤겔은 정신을 자신의 철학을 꿰뚫고 있는 가장 중요한 핵심 개념으로 이해한다.
대게 헤겔이 정신의 위력에 대해 말했을 때, 그것은 객관 정신에서 다루는 역사 이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 왔다.
이전에 출판된 "정신 철학"의 "주관 정신" 편과 근래에 출간된 정신 철학 강의 노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헤겔은 객관 정신마이 아니라 주관 정신에 해당하는 영혼도 육체를 뛰어넘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를 보여 주는 경험적 사실로 최면술을 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 외에도 헤겔은 천리안과 같은 일종의 초능력에 관해서도, 이를 부정하지 않고 정신 질환과 더불어 주관 정신의 변증법적 전개 과정의 한 계기로 이해한다.
이러한 것들은 헤겔에 대한 기존의 해석이 일면적이었음을 보여 주는 사례라 할 만하다.
"주관 정신" 편을 통해 독자는 헤겔 사상의 폭넓음을 확인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구체적 사실과 관련한 헤겔의 저술을 읽고 어느 정도 헤겔의 문체와 어법, 그리고 논증 방식에 익숙해진 독자라면, 헤겔 고유의 사변적 사유를 맛볼 수 있는 "정신 현상학"과 "논리의 학문"에 도전해 볼 수 있다.
이때 우리는 쉽게 책장을 넘기는 버릇을 버리고 한 단어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장이 일상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헤겔 철학의 맥락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헤겔이 앞 단락에서 사용한 용어를 다음 단락에서 어떻게 더 발전된 의미로 사용하는지를 꼼꼼히 살피며 읽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로를 헤매기 십상이다.
"정신 현상학"은 1807년 헤겔이 펴낸 최초의 주저이다.
인식론의 존재 방식에서부터 진리관 혹은 존재의 존재 방식까지를 통일적인 세계상으로 승화시킨 헤겔 철학에 대해 헤겔 자신이 직접 소개하는 입문서라 할 수 있다.
헤겔이 근대의 사상적 기반을 구축했다고 한다면, 이 한 권의 책에 헤겔 철학의 모든 것이 숨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진리가 현상하는 장소로서의 의식을 헤겔은 자연적 의식이라고 부르며, 자연적 의식은 통상적인 우리의 인식이 그렇듯이 객관을 마주하고 있는 주관을 말한다.
그런데 진리란 주관과 객관이 일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리를 탐색하는 의식의 경험은 대상을 자신과 일치시키고 대상에 자신의 지식을 적중시킨다.
하지만 이 지식이 참인지를 검사해 보면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의식은 절망에 빠진다.
다시 대상에 대한 지식을 비교하고 또 좌절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자연적 의식이 갖는 앎은 점점 진리에 가까워진다.
이런 식으로 결국 진리에 도달하게 되는데, 진리란 대상과 의식이 일치하는 것이므로 의식의 경험에 종점에서 자연적 의식은 더 이상 의식이 아니라 정신이 된다.
의식은 대상과 분리된 주관이기 때문이다.
대상과 통일된 정신의 내용은 그 자체가 진리이다.
지금까지 자연적 의식이 자신의 진리를 찾아 온 과정은, 이제 그 종점인 정신에서 볼 때 정신의 진리가 자연적 의식의 경험 과정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의식 경험의 학문은 곧 정신 현상학이 되는 것이다.
"논리의 학문"은 헤겔이 논리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개괄하고 있는, 철학사상 가장 위대한 저술 중 하나이다.
이 책은 전통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 논법을 기초로 하기보다는 부차적 요소로 받아들이고 있는 존재론이다. 전통적으로 논리학은 사고 일반의 형식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헤겔은이 학문이 더 높은 관점으로 근본적으로 개혁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헤겔은 이전의 논리학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결점인 전제된 인식의 내용과 인식의 형식 사이의 분리를 극복하는 것을 자신의 목표에서 이러한 대립을 없애야 하는 과제는 "정신 현상학"에서 절대적인 앎에 도달함으로써 이미 서우치했다고 헤겔은 생각한다.
"논리의 학문"의 시작은 바로 이 지점이다.
사고에 관한 학문은 일단 앞서의 이원론에서 벗어나자마자 더 이상 자신의 외부에 진리의 시금석으로 객관이나 질료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사고에 관한 학문은 오히려 저 자신에 관한 자기 매개적인 해명과 발전의 형식을 띠게 된다.
이러한 형식은 결국 자신 안에 이성적 사유의 기능한 모든 양식을 포함한다.
이와 같이 이원론을 극복한 의식의 형식을 나타내기 위해 헤겔이 채택한 독일어 단어가 다름 아닌 'Begriff(개념)'이다.
"논리의 학문"은 이러한 개념들의 필연적인 자기 발전 과정에 관한 서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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