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철학의 사상 Step1

ejam 2023. 7. 2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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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게오르크 벨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1770년 8월27일 뷔르뎀베르크 공국(현 독일 서남부)의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다.

1788년 남동일의 정통 루터파인 튀빙겐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과 고전을 공부했다.

졸업 후 베른과 플랑크푸르트에서 가정 교사 생활을 거쳐 1801년 셜링의 추천으로 예나 대학의 사강사 자리를 얻었다.

1805년 무급 비정규 교수로 승진했으나 1806년 예나가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하여 대학 폐쇄로 실직했다.

1807년 밤베르크로 이주하여 "밤베르크 신문" 편집장을 맏았다.

1808년에서 1815년까지 뉘르베르크 김나지움의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철학을 가르치다가 1816년 하이델베르크 대학 정교수가 되어 자신의 철학 체계를 강의했다.

1818년 베를린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1830년 총장에 지명되었다.

1831년 콜렐라가 베를린에 번지자 시골로 피신하였으나 너무 일찍 돌아와 감염되어 11월 14일 영면했다.

유해를 베를린 로덴 묘지의 피히데 부부 곁에 묻혀 있다.

 

헤겔의 철학 사상은 동일 이상주의의 완성이자 근대 철학과 현대 철학의 분수령을 이룬다.

헤겔은 인간의 사유와 자연, 사회, 역사, 예술, 종교와 관련된 삼라만상을, 세계정신이 자기를 실현해 가는 계기로 파악함으로써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에 비견할 만한 장대한 철학 체계를 구축했다.

헤겔 사후 한동안은 독일 대학의 철학 교수직을 거의 헤겔의 제자들이 차지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컸다.

헤겔은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선조이지만 유물론자인 마르크스와는 달리 관념론자라는 세간의 평가는 수정되어야 한다.

헤겔을 마르크스의 선조로만 해석해서도 안 되고 헤겔 철학을 관념론으로만 이해해서도 안 된다.

헤겔의 변증법을 정립-반정립-종합의 정식으로 아는 사람이 많으나, 헤겔 자신이 그러한 도식을 언급한 적은 없다.

다만 세계와 사유의 발전을 추동하는 것은 모순과 모순의 해소라고 주장했을 뿐이다.

헤겔이 프로이센 국가 체제를 인류 연사 전체의 절정으로 찬양한 전체주의자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는 자유가 시민 사회가 아니라 국가 공동체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또한 헤겔은 사실과 경험에 바탕을 둔 자연 과학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거만한 사변 철학자, 절대지의 철학자도 아니다.

그는 당대 자연 과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다양한 자연 과학을 통합하여 하나의 체계 속에 융합하려 했을 뿐이다.

 

헤겔의 글은 난해하기로 악명 높다.

그는 사유가 깊고 사변이 중층적인 대아 일상 언어를 과감히 채택하여 독특한 철학 용어로 사용한다.

그 때문에 헤겔의 저술은 그것을 읽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마치 미로를 헤매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헤겔을 저술을 읽고자 할 때 추상적 논의가 아니라 구체적 사실에 바탕을 둔 저술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헤겔의 저작 중 비교적 쉽고 대중적으로 널리 읽힐 수 있는 책은 아마 "법철학 강요(법철학)"와 "역사 철학의 강의 (역사 철학)일 것이다.

헤겔 철학 체계는 논리학, 자연 철학, 정신 철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신 철학 중 객관 정신에 해당하는 위 두책은 자유가 사회 역사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과정을 서술한다.

헤겔은 자유를 외적 장애의 제거로 이해하는 자유주의자들과는 달리 공동체 속에서 정신의 자기 의식과 자기 실현으로 본다.

그는 "법철학"에서 자유가 다른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실현되면서도 그 관계에 제약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칸트에게 자유는 스스로 도덕적 명령을 내리고 스스로 그 명령에 복종하는 것, 다시 말하면 자율이다.

그러나 헤겔은 "법철학"을 그러한 도덕적 자유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인간이 자유롭게 욕망을 충족할 수 잇는 것은 무엇보다 우선 소유물에서이다.

헤겔은 그래서 "법철학"을 소유권 문제에서부터 시작한다.

사회적 주체로서의 인간은 소유권을 장악함으로써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으며, 그것은 계약을 통해서 비로소 확보된다.

그리고 계약을 위반하게 되면, 그극 처벌받아야 하고 그럼으로써 자유를 잃게 된다.

그러나 정당하게 확보한 소유권만으로 인간이 진정 지유로울 수는 없다.

소유물을 통해 욕망을 자유롭게 충족한다 해도 내면의 구속에 매여 있다면 그는 진정한 자유를 얻지 못한다.

인간의 내면적 자유는 도덕을 통해 얻어진다.

스스로 내린 도덕적 명령에 스슷로 복종함으로써 인간은 비로소 자율적 존재가 되며, 단순히 추상적 자유가 아닌 인간적 자유를 얻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내면적 자유가 다만 내면적인 데 머문다면 그 역시 추상적이고 일면적일 것이다.

도덕적 자유는 다시 공동체 속에서 밖으로 표출되고 실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 도덕이 실현되는 공동체는 헤겔이 인륜성이라고 부른는 가족, 시민 사회 국가 . 헤겔은 특히 개개인의 자유는 국가에서 비로소 완전히 실현된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국가를 떠나 존재할 수도, 자신의 자유를 실현할 수도 없다.헤겔에게 국가란 개인들 모두의 공동 이익, 현대적으로 말하자면 복지를 보장해 주고 개객인의 자유를 완성된 형태로 실현하는 공동체이다.

그러나 "법철학"에서 서술한 이러한 자유의 실현 과정은 다만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전개에 불과하다.

현실에서 자유가 실현되는 것은 세계사의 전개를 통해서이다.

따라서 "법철학" 마지막 장은 세계사이다.

"역사 철학"은 세계사에 관한 강의록을 제자들이 편찬, 출간한 것이다.

"역사 철학"은 고대의 동양 세계로부터 헤겔 자신이 살았던 근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책이라 하면, 역사적 사실을 나열했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헤겔은 역사적 맥락을 따라가면서 자신의 순수 철학적이고 정치 철학적인 고찰을 함께 담는다.

진정으로 역사를 알려거든 단지 사실들의 나열만이 아니라 철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헤겔에게 세계사란 정신이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의식하는 자유 의식의 발전 과정과 이러한 의식이 만들어 내는 자유의 실현 과정을 서술한 것이다.

그는 중국을 시작으로 인도, 페르시아로 나아가면서 각 국가의 고유했던 통치술과 정치 체제에 대한 언급한다.

헤겔이 보았을 때 이 시기는 한 사람만이 자유로운 시대이다.

자유 의식이 등장한 것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에게서이다.

그러나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은 특정인들만 자유라고 생각했지, 인간이 그 자체로 자유임은 알지 못했다.

게르만 국가가 받아들인 기독교 안에서야 비로소 인간이 인간이라는 바로 그 이유로 자유로우며, 정신의 자유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라는 의식이 생겼다.

헤겔은 인간의 자유 정신이 정신과 피치자의 열망을 구체화한 대영 제국이나 게르만 민족의 입헌 군주제 아래서 가장 잘 실현될 수 있다고 믿었다.

말하자면 자신의 시대에 세계사가 완성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헤겔이 자신의 시대에 이르러 역사가 끈탄 것으로 보았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지혜의 올빼미가 황혼 녁에야 날개짓을 시작하듯, 역사 철학은 사건이 완료된 이후에 비로소 그 사건을 역사적 관점에서 서술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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