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1. 21:46ㆍ철학
앞에서 언급했던 "차이와 반복", "의미의 논란"와 반대로 독자가 "니체의 철학"을 잘 소화했다면, 이후에 전개될 들뢰즈 철학의 핵심 주제들 대부분을 거의 다 이해했다고 보아도 좋다.
그러나 국내에 소개된 번역에는 아쉬움이 커 다른 언어 번역으로라도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
다행이 들뢰즈는 이 책의 요약본도 출간했는데, "들뢰즈의 니체"가 그것이다.
분량이 짧은 것은 아쉽지만, 이 책은 니체의 생애에 대한 강렬한 소개, 니체 철학의 얼개, 니체의 주요 개념 해설, 니체의 주요 구절 발췌 등을 통해 들뢰즈 자신의 관점으로 그린 네치의 초상을, 어쩌면 들뢰즈 자신의 그것이기도 한 초상을 보여 준다.
니체 철학을 구성하는 두 축인 '힘'과 '권력(권력 의지)'은 니체 자신과 들뢰즈 자신에 대한 숱한 오해를 낳는 부분이면서 도 결국은 들뢰즈 철학의 핵심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욕망의 본질이 생산과 구성이라는 점은 니체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들뢰즈의 주요 선배 가운데 니체만큼은 아니지만 중요한 영향을 준 학자는 스피노자이다.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라는 대작은 , 역시 아쉽게도 번역 상태가 의심스럽다.
하지만 다행히도 들뢰즈는 이 책의 요약본에 해당하면서도, 개정 증보판에 추가적인 논문을 보태어 "스피노자의 철학"을 출간했다.
꽤나 압축적으로 쓴 책이지만, 반복해서 읽다 보면 들뢰즈의 관점으로 그린 스피노자의 초상을 아주 상세히 이해할 수 있다.
생애, 윤리와 도덕의 차이, "에티카"의 주요 개념 해설, 스피노자의 현재적 의의 등 양적으로 "들뢰지의 니체"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준다.
특히 마지막 논문 "스피노자와 우리"는 처음 발표된 글에 동물 행동학자 윅스퀄과 관련된 내용을 추가하여, 후반기 들뢰즈 사상의 변모(affect 개념)를 잘 짐작게 해준다.
참고로, 들뢰즈가 긴 저술을 요약본 형태로 다시 출판한 것은 "들뢰즈의 니체"와 "스피노자의 철학" 두 권뿐이다.
들뢰즈를 소개한 중요한 학술서로는 서동욱이 2000년대 초반에 출판한 "차이와 타자" 및 "들뢰즈의 철학"을 꼽을 수 있다.
서동욱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들뢰즈 철학을 독자적으로 연구, 소개했다.
'생각에 대한 이미지', '주체 및 타자', '법', '기계', '예술 철학', '초월론적 경험론', '사후성', '존재론', '오이디푸스 비판', '욕망' 등 들뢰즈의 주요 주제를, 그것도 다른 사상가들과 비교하면서 다루었다는 점은 한국의 들뢰즈 연구사에서 기억할 만한 사건이다.
물론 세월이 흐른 시점에서 보았을 때 개념 번역어의 선택이나 원전 해석의 맥락 측면에서 아쉬움을 보여 주긴 하지만, 서동욱은 들뢰즈를 학술적으로 소개한 최초의 학자이며 이후의 모든 들뢰즈 연구자 및 독자는 그의 저서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차기 들뢰즈 연구서도 조속히 출간하기를 기대한다.
많은 철학자들이 난해함으로 인해 독자를 괴롭히지만 그 정도가 들뢰즈보다 더한 철학자는 철학사에 없을 것이다.
특히 다루고 있는 내용이 전통 철학 텍스트에 국한되지 않고 문학과 예술, 수학과 과학, 정치와 경제, 기술과 의학 등 모든 인간 활동 분야의 지원을 활용한다는 점이 연구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필자 또는 그 어려움을 겪으면서 "베르그송주의", "천 개의 고원", "들뢰즈 커넥션"등의 책을 번역했으며, 2014년 6월 현재 "안티 오이디푸스" 번역을 마친 상태이고, 오랜 시간을 바쳐 "들뢰즈의 비인간주의 존재론"이라는 학위 논문을 썼다.
외람되지만, 이 논문을 고급 독자에게 들뢰즈에 대한 입문서로 소개하고자 한다.(출판되지 않았으나, 서울대학교 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 논문은 들뢰즈에게 영향을 끼친 핵심 사상가인 스피노자, 니체 , 베르그손에 대한 들뢰즈의 연구를 새로운 관점으로 요약한 것으로, 들뢰즈 철학에서 마르크스의 위상에 대한 독창적 논의가 개진되었으며 들뢰즈 존재론의 얼개와 의의, 정신분석 및 자본주의 비판, 분열증의 긍정적 의미 분석을 포함하고 있다.
아마도 가장 최근에 저술된, 그것도 한국어로 쓴, 의미 있는 연구서의 하나라 자부한다.(논문 일부가 이미 외국 저널에 발표되었기에 이런 과한 표현에 양해를 구한다.)
들뢰즈가 과타리와 함께 쓴 모든 책은 고급 독자의 도전을 기다린다.
그러나 "카프카"와 "철학이란 무엇인가?"의 번역 및 역주는 끔찍한 수준이다.
한편 "천 개의 고원"의 서론인 "리좀"은 길지 않은 분량이면서도 저자들에 의해 단독으로 출판된 적도 있으니, 반드시 읽어 보기를 권한다.
기존의 책의 서술 방식을 완전히 넘어서 있는 이 글은 우리의 생각을 뿌리째 뒤흔드는 '새로운 생각;을 담고 있다.
나무 또는 뿌리 형태의 생각과 리좀 형태의 생각을 예리하게 분리하면서도, 양자가 초월적으로 단절될 수 있음을 저자들은 주장한다.
"천 개의 고원"이라는 방대한 책을 다 읽기로 마음먹을 수도 있겠으나, 차라리 도서관에서 "리좀" 부분만 반복해서 보는 편이 더 효율적이리라 본다.
일단 어떤 식으로건 들뢰즈의 철학의 핵심을 맛보고 나면 다른 책들을 읽는 것이 그만큼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끝으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통독을 통해 들뢰즈를 정복해 보고자 하는 의욕을 북돋우는 책으로 "안티 오이디푸스"를 꼽고 싶다. (이 책은 2014년 6월 현재 새로 번역되어 출간 준비 중이다.)
과라티와 만나 작업한 첫 저서이자 68혁명의 열망과 좌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책은, 훗날 "천 개의 고원"으로까지 연장되지만, 단독으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이 책에서 들뢰즈의 철학적 토대인 존재론이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직전 저작인 "의미의 논리"에 등장하는 '종합 이론'은 완전히 폐기되며, "안티 오이디푸스"에 이르러 비로소 끝까지 지속될 갱신된 모습으로 정립된다.
또한 정신분석을 현대의 신학이라 비판하면서 완전히 결별하고, 혁명적 정치를 위해 '분열-분석'이란는 새로운 실천학을 제시한다.
나아가 국가의 역활, 자본주의 체제, 화폐와 시장에 대한 면밀한 역사적 / 논리적 분석을 통해 현재 세계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선견지명 있는 고찰을 보여준다.
그리고 니체와 마르크스의 행복한 결합을 성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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