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철학의 사상 Step2

2023. 7. 19. 16:06철학

728x90

Socrates B.C.470~B.C.399

 

두 번째 단계는 소크라테스가 그의 대화속에서 다루었던 물음들, 즉 덕에 관한 대화편들을 읽어 보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덕"이라고 부르는 말은 원래 그리스어 "아레테 arete"를 옮긴 것인데, 이 말은 사람이나 동물, 혹은 사물에 내재된 기능적 탁월함을 뜻하였다.

예컨대 칼의 아레테는 잘 자르는 것이고, 말의 아레테는 잘 달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아레테는 무엇일까? 그것은 물론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탁월함일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그러한 인간적인 탁월함, 즉 것의 세부 항목으로 지혜, 경건, 분별, 용기, 정의 등을 들었다.

이 덕들을 갖춤으로써 사람들은 행복해질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도시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하기에 정계 입문을 꿈꾸던 젊은이들은 덕을 출세의 수단으로 생각하여 배우려하였고, 소피스트들은 덕의 교사임을 자처하며 젊은이들을 유혹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전통적인 덕의 습득에만 몰두했을뿐, 누구도 덕의 본성을 살펴보는 것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덕이 과연 무엇인지,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 서로 다른 이름의 덕들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리고 덕이 과연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인지, 만일 가르쳐질 수 있다면 어덯게 해서 덕을 배울 수 있는지 등의 물음은 최초로, 그리고 온전히 소크라테스에 의해 제기된 것들이었다.

플라톤의 "라케스"는 덕 가운데 용기의 본성을 탐구하는 대화편이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라케스와 니카아스라는 두 명의 장군과 대화를 나눈다.

전쟁터가 용기라는 덕목을 가장 필요로 하는 장소라고 한다면, 전쟁의 지휘관인 장군은 용기의 덕을 가장 잘  체화한 전문가들일 것이다.

대화자들은 각자 자신이 용기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이어나가면서 정작 용기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대화편에서 눈여겨볼 점은, 용기의 전문가임을 자처하는 라케스와 니키아스가 정작 용기를 정의하고 용감한 행위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는 서로 상반된 입장을 취하며 대립한다는 점이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우리가 무엇을 진정으로 안다면 아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생각이 다를 수 없다.

결국 대화자들의 대립은 그들의 용기의 덕을 진정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며, 용기에 대한 믿음이나 확인이 지식을 대체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

"에우튀프론(플라톤의 네 대화편에 수록)"의 주제는 경건이다.

경건은 신과의 관계에서 인간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소크라테스는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에우튀프론과 경건에 관하여 대화를 나눈다.

에우튀프론의 직업은 예언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예언자는 신탁의 해석이나 해몽, 또는 제사 등과 관련하여 사람들에 조언을 하는 종교 전문가였다.

따라서 에우튀프론은 경건의 문제에 관한 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대화자들과 마찬가지로 에우튀프론 역시 경건에 대해서 안다고 믿고 있을 뿐, 사실을 경건의 본성을 알지 못하고 있음이 밝혀진다.

경건에 관한 철학적 탐구 과정뿐만 아니라, 대화자들이 처한 극적인 상황을 비교해 보는 것도 독서의 재미를 더해 준다.

그 사실을 확인하러 관청에 간 것이었고, 에우튀프론은 자기 부친을 살인죄로 고발하고자 관청에 간 것이다.

에우튀프론에 따르면 불의를 저지른 자에 대해서는 그가 누구든, 심지어 가족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단죄해야 하며, 오직 그것만이 경건에 부합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이 대화편은 경건의 원칙을 지키고자 아버지를 고발한 에우튀프론과 불경죄로 고발당한 소크라테스가 경건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작품이라 하겠다.

"라케스"와 "플라톤의 네 대화편"이 용기와 경건 같은 개별적인 덕의 본성을 다루는 작품이라면 "프로타고라스"는 개별적인 덕과 덕 일반의 관계를 탐구한다.

이 대화편에는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프로타고라스를 비롯하여, 히피아스와 프로디코스등 당대의 이름난 소피스트들이 등장한다.

소피스트들이 덕의 교사임을 자처했던 점을 감안할 때, 소크라테스는 그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덕의 본성을 둘러싸고 그들과 대결을 벌이려 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지혜, 용기, 분별, 정의와 같은 개별적인 덕들과 덕 일반의 관계를 중심 주제로 다루지만, 이 논의의 이면에는 덕과 지식의 관계, 덕과 쾌락의 관계, 그리고 덕과 행복의 관계 등 덕의 본성을 둘러싼 거의 모든 핵심적인 물음들이 총마라되고 있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토만의 것이 아니다.

수많은 작가들이 소크라테스에 관해 말하거나, 혹은 소크라테스의 가면을 쓰고 그를 화자로 내세워 발언하였다.

하지만 플라톤의 작품들과 달리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은 대부분 소실되었고, 그 내용에 대한 줄거리나 단편들만이 전하고 있다.

다행히 비록 소수이긴 해도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 주는 몇몇 작품들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희극 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가 쓴 "구름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1"과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군인이며 정치가인 크세노폰이 쓴 소크라테스식 대화들(향연 / 경영론)이다.

이 작품들은 플라톤이 묘사하는 것과 비교할 만한 소크라테스의 초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가 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에서 소크라테스를 "사색원"이라는 학교의 원장으로 등장시킨다.

거기서 그는 줄에 매달린 바구니에 들어앉아 하늘의 별을 관찰하는가 하면, 올림포스의 신들이 아닌 자연의 요소들을 가지고 대기 현상을 설명하며, 빚에 몰린 채무자들에게 말로써 채권자들을 무찌를 수 있는 논쟁의 기술을 가르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연을 탐구하는 과학자의 모습을 띠는 동시에 , 법정에서 논쟁의 기술을 가르치는 수가가이자 소피스트처럼 묘사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철학자가 아닌 작가 혹은 일반 대중들의 눈에 비친 소크라테스가 자연학자나 소피스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또 이러한 모습은 플라톤의 "변론"에서 언급되는 소크라테스에 대한 오래된 오해와 악소문의 원천과 이어지는 부분이기도 한다.

소크라테스의 또 다른 제자인 크세노폰은 스승을 찬양한다는 점에서 플라톤과 같은나, 몇몇 중요한 점에서는 그와 입장을 달리한다.

"향연 / 경영론"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덕의 훈련만큼이나 신체에 단련을 강조하며, 특히 각종 욕망과 고통에 맞서는 극기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평가한다.

이것은 플라톤의 소크라테스가 덕을 일종의 지식으로 보는 것과 구별되는 부분이다.

또한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는 경건이나 정의와 같은 몇 가지 덕목들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입장들고 ㅏ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