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철학의 사상 Step1

2023. 7. 19. 16:03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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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rates B.C.470~B.C.399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70년 혹은 469년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소프로니스코스는 석공 또는 목수이었고 어머니 파이나레테는 산파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들의 이름과 직업 모두 확실치는 않다.

소크라테스는 시민의 의무에 따라 세 차ㅖ 참전한것을 제외하면,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크산티페라는 여인과 결혼하여 슬하에 세 명의 자식을 두었다고 하나, 세부적인 것들을 놓고 보면 이 역시 확실한 것은 아닌다.

생애만을 놓고 보자면, 소크라테스의 삶은 지극히 평범하다.

그렇다고 사상적인 면에서 독창적인 학설을 내세우거나 심오한 사유 체계를 수립한 것도 아니었다.

소크라테스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가 일상적으로 영위했던 독특한 삶의 방식, 즉 철학적 대화였다.

그는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한 앎이야말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 주제에 관해 앎을 차처하는 사람이 있ㅇ다면 그가 누구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답을 청하였다.

훗날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식 문답볍"이라고 부르게 된 이러한 대화 방식은 수많은추종자들과 동시에 수많은 적들을 만들어 냈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적 실천을 불온하고 위험한 것으로 간주했던 사람들에 의해 불경죄로 고발당하고,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사형당하게 되지만, 그가 삶 속에서 보여 준 철학적 대화와 실천들은 2천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자들과 지식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철학사의 가장 앞에 놓이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앞선 철학자들은 하늘과 자연의 현상들을 관찰하면서 세계의 원리를 탐구하였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 철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소크라테스에 이르러서이다.

그래서 키케로는 소크라테스가 처음으로 철학을 하늘로부터 불러 내려 도시에 세우고, 철학에다가 삶과 관습, 그리고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에 대한 탐구의 임무를 부여했다고 평가한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한마디로 '잘 산다는 것', 즉 '좋은 삶'의 근거에 대한 탐구로 요약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지만, 정작무엇이 행복한 삶인지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흔히 사람들은 재산이나, 지위, 명예 등이 좋은 것들로서 행복의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하지만, 소크라테스에게 그것들은 그 자체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며 오히려 잘못 사용할 경우에는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들이다.

그는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한 앎이야말로 행복에 이르는 첩경이라고 생각했다.

즉 살아가면서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를 알며, 좋은 것을 추구하고 나쁜 것을 피함으로써 사람들은 참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좋고 나쁨을 구별하는 지식이 바로 "덕"이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덕의 본성과 그 획득 가능성을 모색하였을 뿐만 아니라, 덕의 개별 항목에 속하는 경건, 절제, 용기, 그리고 정의 등에 관해서도 그 각각의 본성 및 상호 간의 관계를 탐구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오직 대화를 통해서만 철학을 했을 뿐 어떠한 글도 남기지 않았다.

따라서 소크라텟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로 그의 제자들이 남긴 증언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들은 소크라테스와 관련하여 가장 구체적이고 풍부한 자료들을 제공한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따로 글을 남기지 않았고 그의 사유의 핵심이 철학적 대화라고 하는 독특한 실천에 있다고 한다면, 소크라테스가 영위해 온 삶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그 사유를 더금어 가는 데 필수적인 일이라 하겠다.

그의 삶과 철학적 실천의 진면목을 들여다보는 첫 단계로 권할 작품들은 플라콘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론(이하 변론)과 "고르기아스"이다.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열린 것은 기원전 399년이었고 당시 그의 나이는 70세엿다.

그는 이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을 언도받은 뒤 약 한 달간 감옥에 갇혀 있다가 죽게 된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 즉 재판의 이융에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이해라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기소 항목은 크게 셋이다.

소크라테스는 도시가 믿는 신을 믿지 않았고, 새로운 영적인 것을 도입하였으며, 젊은이들을 타락시킴으로써 부정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틑 이 기소 항목들에 하나하나 답하면서, 사실 이 고발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을 둘러싸고 조금씩 형성되어 온 부정적인 소문들의 결과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자신에 관한 오해와 비난을 불식시키기 위해 지나온 삶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변론을 대신한다.

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반성 없는 삶이란 무가치하다고 단언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해온 일은 끊임없는 캐물음을 통해, 자기기만과 허위의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무지에 대한 자각의 계기를 마련해 주는 일에 다름 아니며, 이는 신이 자신에게 내린 사명이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변론"은 비난과 고발에 맞서 자신을 방어하는 형식으로 전개되지만, 오히려 독자들은 그 속에서 무비판적이고 반성 없는 삶에 맞서 얼핏 당연하게 보이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캐묻고 탐구하며 검토하는 삶, 즉 철학적인 삶에 대한 옹호를 보게 된다.

"변론"이 소크라테스의 법정 연설이라는 형식으로 전개되는 작품이라면, "고르기아스"는 등장인물들 간의 격렬한 논전 형식으로 진행되는 대화편이다.

이 작품에서 소크라테스는 당시 가장 유행하는 기술이었던 "수사술"의 의의와 가치를 놓고서 고르기아스, 폴로스, 카리클레스라는 세 명의 대화자들과 차례로 논쟁을 벌인다.

수사술은 민회나 법정 등에서 대중을 설득하는 기술로, 이 기술은 특히 아테네 민주정하에서 출세와 성공의 수단으로 젊은이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고르기아스는 실제로 고전기 그리스 최고의 수가가이며, 폴로스는 고르기아스의 제자이자 수사술 교본의 저자로, 그리고 칼리크레스는 고르기아스를 추종하는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독자들은 "고르기아스"의 논전을 지켜보면서 수사술과 철학, 수사가의 철학자가 모든 면에서 날카롭게 대립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르기아스는 수사술이 어떤 주제이든 간에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한다.

폴로스는 불의를 당하느니 차라리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칼리클레스는 수사술만이 자신과 가정을 기켜주는 "어른의 기술"이요, 철학은 젊은 시절 잠깐의 취미로 삼기에나 좋은 것을 뿐, 결코 개인을 지켜 줄 수 없으리라고 경고한다.

"고르기아스"에서 수사가들은 철저하게 대중들의 대변자임을 자처한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은 놀랍게도 현대 사회의 대중적인 가치관과도 적잖은 일치점들을 보인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현실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실리를 추구한다.

정의란 어쩌면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명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사람들을 설득하여 나의 편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나와 나의 가정을 지켜 나가는 데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고르기아스"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은 수사가들의 바로 이러한 "현실 논리"에 맞서 소크라테스가 어떻게 철학을 옹호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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