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14. 16:15ㆍ철학
일반적으로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부터는 실제 소크라테스의 사상보다 플라톤 고유의 사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플라톤의 사상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바로 형상 이론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 형상 이론을 자세하게 다루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중기 대화편으로 꼽히는 "파이돈", "향연", "국가"에서도 형상에 대한 논의는 기대처럼 많지도 않고 구체적이지도 않다.
"형상들의 형상"이라고 하는 '좋음'의 형상에 대한 언급하는 "국가"가 바로 그런경우이다.
"국가"의 4권과 10권에서 비교적 자세하게 형상이론이 언급되지만 '좋음'의 형상에 대한 이야기는 다분히 비유적으로만 설명된다.
게다가 이 대화편의 가장 중요한 주제인 '정의(올바름이라고도 번역)의 형상에 대한 규정은 내내 막연한 상태에 머문다.
물론 정의의 형상에 대한 규정은 '제 할 일을 함'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이 말만 가지고 정의의 의미를 실감하기란 어렵다.
정의 대한 이 규정이 갖는 실질적인 의미는 우리가 이 대화편 전체를 깊이 있게 읽어 가면서 깨달을 수 있다.
이렇듯 각 형상에 대한 규정을 대화편에서 논의하는 질문에 대한 실질적인 정답으로 보려는 생각은 대개 수포로 돌아간다.
그래서 철학사에 나오는 플라톤의 형상 이론에 대한 상식을 고집하면 할 수록 플라톤의 대화편은 오리무중에 빠지기 마련이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은 그런 이해의 편으를 돕기 위한 상식을 넘어서서 항상 전체의 문맥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 신비적인 측면이 도드라지는 "파이드로스"를 읽을 때도 이 점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 대화편에서 플라톤은 에로스의 본성에 대한 탐구와 연설술(수사학)에 대한 탐구를 연결한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갖는 에로스의 본능은 우리가 순수한 영혼의 세계에 머물 때 보았던 아름다움의 형상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아마도 이 때문에 철학사적으로 형상 이론은, 형상이 우리가 사는 이세계 초월한 별도의 세계에 존재한다는 이른바 '두 세계이론'으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프라톤의 글을 글자 그대로만 해석하려는 단순한 독서에 기인하며 글에서 이론만을 찾아 읽으려는 이론 강박증의 소산이다.
'형상들이 영혼의 세계 속에 있다'는 말은 형상이 개별적인 사물들이 존재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설명을 하기 위한 비유였을 뿐이다.
플라톤의 모든 대화편은 단순히 자신의 이론을 전달하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화편에는 논증적인 이야기(로고스)뿐만 아니라 비유의 상징의 이야기(뮈토스)도 같이 등장한다.
이런 두 가지 이야기ㄹ의 혼재 때문에 그의 대화편에 대한 이해는 자주 모호함과 혼란의 난관에 부딪치곤 한다.
그러나 이렇게 된 이유는 플라톤이 팩을 통하여 단순이 이론을 전달하려고 하지 않고 독자의 삶을 치유하고 상승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론의 사다리를 고집하는 대신 플라톤이 대화의 형태를 통해 진정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찾아 읽고 참여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플라토 후기의 대화편들을 읽는 일은 만만치 않다.
이론은 현저히 추상화되고, 논의는 길고 복잡하며, 문학적 향기는 옅어지고, 문장은 이전에 비해 건조하고 거칠다.
하지만 그가 펼쳐 내는 철학적 논의는 더욱 깊어져 아직도 우리는 그 유산을 다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그의 후기 대화편들을 대할 때, 우리는 그 이전 대화편들에서 제기된 문제들의 연장선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
플라톤의 자연 철학이 담긴 '티마이오스'도 그렇다.
이 대화편 속의 대화는 마치 '국가'에 나오는 대화를 했던 다음 날 이루어지는 것처럼되어 있다.
전날 이상적인 나라와 그 시민들에 대한 이야기했던 소크라테스가 이제는 그런 시민들과 나라가 실제로 있는지를 알고 싶다고 하자, 동석했던 사람들 중 크리티아스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틀란티스 이야기를 꺼낸다.
아득한 고대에 있었던 아틀란티스가 지중해 전역을 점령하려 할 때 이에 맞서 싸워 물리쳤던 고대 이테네야말로 바로 소크라테스가 이야기했던 그 이상적인 나라와 시민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내용을 전하기 앞서 크리티아스는 이러한 이상적인 나라와 시민이 가능할 수 있는 조건, 즉 우주와 인류의 탄생부터 먼저 짚어 볼 것을 제안한다.
이렇게 플라톤은 자신이 그 전까지 강조해 왔던 실천적인 삶의 가능 근거를 우주와 만물의 탄생 과정에 대한 이해, 즉 자연 철학으로부터 끌어오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티마이오스'라는 자연 철학적 저술을 단순히 플라톤이 자연에 대한 올바른 설명을 하는지만 따져 가며 읽기보다는, 참된 삶이라는 더 큰 문제를 다루기 위한 기획으로 이해하려는 시각에서 읽어야 한다.
모든 문제는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플라톤의 마지막 대화편으로 추정되는 "법률"이 생생한 증거가 될 것이다.
"국가"에서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삶의표본을 제시했던 플라톤은 "정치가"와 같은 후기 작품에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일혼적으로 고찰하는 과정을 거쳐 "법률"에서는 "국가:와는 다른 형태의 정치 체제를 제안한다.
이 정치 체제는 자연과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 즉 우주의 탄생과 인간의 본질이 동일한 이성의 발현이라는 통찰이 기초가 되어 구성된다.
자연 세계와 인간에게 발현된 이성 이 법률을 통해 인간이 만든 공동체에도 배분될 때, 이성적인 정치 체제가 가능하다고 플라톤은 생각한다.
그리고 법률에 의한 이성의 배분은 우주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에 토대를 둔 법률을 제정하여 강제하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고, 법률을 통해 시민들의 이성을 일깨워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냄으로써 완성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유럽의 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각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유명한 말은 플라톤의 철학이 시대마다 새로운 각주에 의해서 새롭게 읽혀야 한다는 듯이 될 것이다.
플라톤의 철학은 고대의 유물로 갇혀서도 안 되고 같힐 수도 없다.
왜냐면 플라톤의 철학적 이론이 철학사의 한 부분으로 고정될 수 있어도, 그의 대화편에 나타나는 근본적인 사유의 힘과 상상력은 여전히 우리의 고정 관념을 흔드록 새로운 탐구의 길로 나서도록 부추기기 때문이다.
우라가 플라톤을 그의 대화편들을 통해 한 자 한 자 새로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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